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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사상 보조사상 제4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5 - 78 (6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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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이란 산스크리트어 ‘Arhat’을 음역한 阿羅漢을 줄여 일컫는 말로, 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불교의 성자를 뜻한다. 십육나한도는 부처의 在世 시 석존을 따르던 열여섯 명의 제자와 비구에서 유래하며, 오백나한도는 부처의 제자 중 아라한과를 얻은 오백 명의 나한을 그린 그림이다. 본 연구에서는 2017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에 출품되었던 8점의 고려 나한도를 중심으로 나한도의 조성과 신앙 의례를 살펴보았다. 나한도는 대체로 세로 55~ 60cm, 가로 40cm 내외의 유사한 크기로, 나한의 자세와 가사의 형식, 기입된 화기의 형식과 내용상 하나의 세트로 조성되었다. 과거에는 한 폭에 한 존자를 그린 독존형 나한도를 모두 오백나한도로 보았으나, 존명에 대한 검토를 통해 각각 십육나한과 오백나한도에 해당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라는 별개의 그룹이 하나의 세트로 조성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적 규모로 개최된 다양한 불교의례는 고려사 연구의 중요 주제 중 하나로, 국왕이 사찰에 幸行하여 설한 羅漢齋의 개최 기록과 나한신앙은 일찍부터 관심을 받았다. 『고려사』, 『고려사절요』와 같은 공적인 기록 이외의 문헌과 현존하는 나한도를 살펴보면, 나한에 대한 의례는 勸供儀禮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특징은 나한신앙의 근거가 되는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서도 비롯되며, 십육나한 중 첫 번째 존자인 빈두로존자에 대한 예경의식을 담은 『請賓頭盧經』에서 부터 보인다. 『法住記』, 『法苑珠林』 등의 문헌에서 주목되는 점은 나한에 대한 권공을 현실의 승려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이다. 나한은 자신의 신통력을 숨기고 평범한 승려의 모습으로 현현할 수 있었다. 고려 십육나한도가 덕이 높은 고승이나 역대 조사의 초상화인 眞影의 특징적인 형식인 倚坐像 형식을 적용한 점도 이와 연관하여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나한의례를 위해 불전에 필요한 설비와 공구를 갖춰두고, 의례를 항례적으로 개최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은 서로 다른 경전상의 연원을 지니나 의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결합되고 수용되었다. 고려 나한도는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 독립된 형식으로 조성되기도 했으나 羅漢堂, 羅漢殿에 함께 봉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일본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에 전하는 <석가삼존십육나한도>, 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 <석가삼존십육오백나한도>는 석가설법회의 한 구성으로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 결합되어 시각화된 사례이다. 기존 연구에서 오백나한의 존명을 규명하는 자료로 활용된 影波 聖奎(1728~1812)의 『五百聖衆請文』은 고려 나한 의례를 복원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이 있다. 나한의례는 재회를 베푸는 연유를 설명하는 開啓를 송하고, 도량을 결계하고 향수를 뿌리고 깨끗하게 하여 단을 세운 후 제 성중을 소청한다. 의식문은 영산교주 석가모니불과 좌보처 자씨보살, 우보처 제화갈라보살을 爲首로 ‘십육오백대아라한’을 청하여 공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례문으로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의례문이라는 시기적 한계가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1574년 安邊 釋王寺에서 간행된 『勸供諸般文』에 주목하였다. 영파 성규는 『五百聖衆請文』을 지을 때 無學大師가 석왕사에서 사용한 오백나한 의례문을 참고했다고 밝혔는데, 『勸供諸般文』은 고려시대 활용되었던 재공의식을 수록했다는 점, 권공의 대상을 봉청하여 공양하는 ‘請文’의 구조와 절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석가삼존십육나한도>, <석가삼존십육오백나한도>의 구성에는 監齋使者와 直府使者가 도해된다. 선행 연구에서는 두 사자의 존재를 명부신앙의 신앙범주에서 해석했으나, 이미 감재사자와 직부사자는 法華經 신앙 내에서 위치와 역할이 분명하다. 석가모니불의 영산 설법 당시 십육나한을 비롯한 제 성중과 함께 동참한 존재로 의식에 봉청되었다. 十六羅漢請, 五百聖衆請文, 五百羅漢禮懺 등 나한의례에서 감재사자와 직부사자는 ‘使者請’ 항목에서 봉청된다. 1195년에 작성된 <醫王寺始創阿羅漢殿記> 등에서도 나한전을 온전하게 구성하기 위해서는 使者圖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1398년 조선 태조의 명으로 오관산 성등암을 중창하고 새로 봉안한 석가삼존과 십육나한, 오백성중을 한 폭에 도해한 석가설법회도가 도해된 기록에서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 결합된 나한도상과 신앙의례가 고려에서 조선 초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은 영산교주 석가모니를 위수로 한 석가설법회의 일원으로 신앙되어 조선시대 나한전, 응진전과 같은 건축 공간의 구성에 반영되었다. 또한 현행 예경문에 이르기까지 계승된다는 점에서 고려 나한도와 나한의례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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