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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윤복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제115호
발행연도
2022.10
수록면
84 - 117 (34page)
DOI
10.46407/kjci.2022.10.1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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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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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 사화인 갑자사화의 희생자 다수가 대간이며, 그리고 이러한 갑자사화를 주도한 사람의 하나가 임사홍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글에서는 임사홍과 대간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임사홍의 유배 과정, 성종 말기 서용(敍用), 즉 복권(復權) 시도 과정, 그리고 연산군 재위기 서용 과정으로 나누어 검토해 보았다. 먼저 임사홍의 유배 과정에서 대간은 임사홍이 붕당을 결성하려고 한 소인(小人), 즉 간신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임사홍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반드시 충분한 증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성종 말기 서용 시도 과정 및 이어지는 연산군 재위기 서용 과정에 있어서도 대간은 계속해서 임사홍이 붕당을 결성하려고 한 소인, 즉 간신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으며, 철저히 임사홍에 대해 반대하는 언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임사홍이 소인이라는 대간의 주장은 사실상 명분에 불과하며, 당시 임사홍은 당대 최대의 권신(權臣)에 해당해, 대간은 이러한 임사홍을 배척, 견제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연산군이 대간 언론을 ‘능상(凌上)’에 해당한다고 보게 됨에 따라, 대간은 임사홍을 견제하는 데에 실패하게 되고, 이는 결국 갑자사화가 발생하는 큰 원인이 되는데, 이 연구 결과는 임사홍이 당대 최대의 권신이었던 만큼, 갑자사화에서 대간이 화를 당하는 규모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더불어 현대 우리 사회에는 누군가가 예를 들어 ‘빨갱이’, ‘친일’이라고 ‘낙인’ 찍히면, 그 사람의 장점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 사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연구결과는 역사적으로 대간이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한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이러한 낙인 문화의 원점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목차

1. 머리말
2. 조선 초기 국왕 외척·종친, 그리고 대간의 정치적 성격
3. 임사홍의 유배 과정과 대간 언론
4. 성종 말기 임사홍의 유배 해제 및 서용과 대간의 반대 상소
5. 연산군 시기 임사홍 서용과 대간의 반대 상소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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