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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규 (순천향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중국학논총 제76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11 - 128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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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에서는 임진왜란 시기 소주 가씨의 해동조 가유약(賈維鑰)의 행적과 문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충남 태안 남면 양잠리에 가유약 – 가상 – 가침 삼대, 즉 소주 가씨 해동 삼조를 기리는 숭의사가 있다. 가유약은 소주 가씨의 해동조이다. 원 고향은 하북 준화이고, 부친은 병부우시랑 가응원이다. 1589년(만력 17)에 진사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시기에 두 차례 조선에 들어왔다. 1593년(만력 21)에 조선에 들어와 명군의 군공 감찰과 칙서 반포에 나섰고, 1599년(만력 27)에 다시 조선에 들어와 일본군의 재침을 방비하는 선후책(繕後策)을 주도했다. 가유약은 재기가 걸출한 문사였다.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악부, 산곡 등에 능하였다. 조선에 머물고 있을 때 당대 최고 문인 차천로(車天輅), 허균(許筠) 등이 나서 가유약을 응대했고, 조선 조정과 사관도 가유약의 문재가 빼어났다고 평했다. 오늘날 전해오는 가유약의 <무종동(無終洞)>, <보주산조망(寶珠山眺望)>, <숙서흥관운(宿瑞興館韻)>, <부산평왜비명(釜山平倭碑銘)>에서 그의 문체가 뛰어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앞으로 가유약을 논할 때 사실에 걸맞는 평가 작업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가유약은 임진왜란 때 국난에 빠진 조선을 돌봐준 인사였다. 집안에서도 가유약의 일대기에 대해 여러 다양한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고 새롭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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