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교 (육군삼사관학교)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연구 인문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121 - 160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문은, 고려 고종 무렵 大越을 떠나 고려로 移居한 李龍祥(Lý Long Tường’)의 혈맥을 추적한 논문이다. 李龍祥에 관한 연구 자체도 영성한 현실이지만, 그의 혈맥의 흐름, 생활 권역, 주요 행적과 관력 등의 검토나 비정은 전무했다. 까닭에 본문은 그간 전혀 주목되지 않은 사안을 다룬 개척 연구이다. 이는 단지 화산이씨 일가의 부침, 명멸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 간 역사적 연원의 추적이며, 양국의 유대를 심화시킬 시의성에도 부합될 유의미한 작업이다.
먼저 본문은 李龍祥혈맥을 추적할 주요 자료인, 『화산 李氏족보』 내용과 편찬 과정, 족보의 갈래를 심층 분석하였다. 그 결과 『화산이씨 족보』는, 1)1子계열(초보~5수보), 2子계열(垕의 별도 족보)로 각기 분리되어 보존, 전승되었고, 2) 6修譜(1987년)에 이르러 비로소 大同譜(全)의 형태로 합쳐졌으며, 3) 몇몇 인물들의 경우 생몰년, 官歷에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족보 편찬 시기에 있어서는 2자 계열, 垕(李龍祥의 17세손)가 작성한 족보서(1707년)가 1子계열 枰이 작성한 초보서(1706년)보다 표기상으론 1년 늦지만, 실제 가장 오랜 기록이었다. 이로 본다면, 초보서(1706)~중수보(1777)의 사이에서 大越의 정보를 바탕으로 李龍祥(Lý Long Tường’) 移居설화가 단계별로 창작되었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은 전체 족보의 얼개를 조감하지 못한 채, 1子계열의 족보에만 천착한 결과 빚어진 순전한 오류와 착간인 셈이다.
李龍祥1子계열, 2子계열의 혈맥, 관력, 생몰연대, 분묘 및 묘역 역시 전혀 고찰되지 않았는데, 필자는 족보 기록의 대조와 현지답사의 반복을 거쳐 분묘의 분포 및 묘역 등을 사상 최초로 구명, 본문에 게재했다. 특히 본문은 「유사」, 「개단선영기」, 「충효당기」 등에 대한 최초의 본격 검토, 각종 지리서 등의 비교·검토를 토대로, 2자 계열의 동선을 추적, 안동부(현 봉화) 내 활동 권역과 묘역(안동파의 선영), 밀양의 화산이씨 선영(무연리, 청운, 운정에 이르는 밀양파의 선영)의 위치 역시 推察·정리하였다. 단언컨대, 이상에서 파악한 내용은 空前의 것으로, 향후 화산이씨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화산 이씨의 혈맥과 특징
Ⅲ. 1子 幹의 계통과 흐름
Ⅳ. 2子 一淸의 계통과 흐름
Ⅴ. 惟顔과 垕가 남긴 기록들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1-001-001741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