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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현우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81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127 - 154 (28page)
DOI
http://dx.doi.org/10.18347/hufshis.2022.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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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해외 교육의 실태를 시찰·조사한 조선총독부 학무국 시학관의 파견 배경과 추이 및 그들의 활동을 검토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출장 및 재외연구원제도를 통해 1917년부터 1929년까지 6명의 시학관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모두 일본인으로,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1920년대에 파견되었다. 1910년대 시학관의 해외 교육 시찰은 동남아시아 식민지에 대한 구미의 교육정책에 주목하였다. 시학관은 홍콩, 필리핀, 자바섬 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파견되었다. 이들 지역에 대한 구미 열강의 교육 기조는 조선에 대한 고등교육 억압방침을 수정한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1920년대 시학관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미국에 파견되었다. 해당 시기 시찰의 주요 목적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교육방침을 마련한 임시교육심의위원회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임시교육심의위원회의 간사를 맡은 시학관들을 구미로 파견하여 보통학교에 농업 중심의 실업 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교육실제화’ 정책을 비롯하여 공식적인 ‘청년훈련’의 실시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이들 시학관은 3·1 운동 이후에 크게 확산된 조선인의 ‘향학열’을 잠재우고 조선인을 초보적인 기술인력으로 양성하는 한편,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구미 교육의 실상을 왜곡하여 선전하였다. 조선총독부 시학관의 해외 교육 시찰·조사 활동은 조선총독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을 뒷받침하며, 식민지배체제의 유지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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