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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집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사상 보조사상 제64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139 - 17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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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명 보정(1861-1930)은 1875년 송광사 금련 경원(金蓮 敬圓)의 문하로 출가한 후 그곳에서 생애를 보냈다. 출가 전반부는 수행자로서 교학을 습득한 후 선을 수행하고 송광사 전통을 인식하는 시기였다. 그는 전통적인 사교입선의 이력 과정을 수행하였다. 송광사에서 배출된 많은 인물 가운데 보조 지눌과 부휴 선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었다. 보조 지눌은 고려조 송광사 개산 이후 조선조까지 송광사의 역대 조사가 배출되는 시작이며, 선종인 조계종의 종통을 계승하여 임란 이후 어려워진 송광사를 넘어 조선불교를 지킨 공로자로 보았다. 그로 인해 비록 조계종이란 종명은 없어졌지만 부휴 선수를 조선조 조계종의 종주로 인식되었다. 출가 후반부는 대한제국 시기를 거쳐 1910년 8월 한일합방과 1911년 6월 사찰령 제정으로 조선불교가 일제의 통제에 들어간 기간이다. 그는 지금까지 계승된 승가의 전통이 점점 퇴색되는 것을 목격하고 송광사를 포함한 조선불교가 신학문과 새로운 포교 활동에 진력해야 함을 인식하였다. 1909년 신학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송광사와 송광면이 연계하여 普明學校를 설립하였다. 1923년에는 보성군 벌교면 지역 유지들과 협력하여 松明學校를 세웠다. 학교는 민족 인재의 양육 장소이고, 그곳에서 육성된 혁명의 장부는 개화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송광사 대중들을 입학시켰다. 그런 인식이 깊어져 제자를 일본 유학을 보내는 등 불교계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포교 활동을 생각하고 경운 원기와 순천군 남문 밖에 있는 喚仙亭을 사들여 順天佛敎布敎堂을 세웠다. 이곳에서 백련 결사를 주도하여 많은 신도에게 감응을 주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금명은 1875년 출가 이후 송광사에 주석하며 전통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한편,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교화 활동을 전개하여 송광사의 위상과 교세 확산을 위해 노력한 선지식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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