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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세현 (경상국립대학교)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75호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1 - 3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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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정씨 문헌공파는 정여창에 의해 함양이라는 지역을 넘어서는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성종대 진행되었던 사림정치의 활발한 전개 과정 속에서 정여창의 仕宦은 학문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양의 명문 사대부 가문들과 혼맥을 통한 광범위한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정여창 형제와 후손들은 함양의 대표적인 재지사족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했고, 정여창을 安葬한 함양 개평은 학맥과 혼맥을 통해 지역 내에서의 인맥 구축과 함께 중앙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적네트워크의 확장성을 확보했다. 정여창 가문의 위상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宗統 논쟁은 조선 중기 성리학적 종법 질서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여창의 奉祀를 중심으로 한 종통 논쟁은 조선 전기의 경국대전 체제가 지닌 양면성이 가계 계승을 강조한 주자가례 의 원칙에 의해 입후가 정착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가는 모습을 반영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여창 가문의 종통 논쟁에는 붕당체제의 정치 역학적 힘이 개입되기도 했다. 인조반정을 전후하여 정여창 가문은 서인과의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주요 정치 현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종통 논쟁의 전면에서 활동했던 鄭弘緖를 중심으로 한 정여창 후손들은 조식을 중심으로 한 북인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반면 이이와 성혼을 중심으로 결집하던 서인 가문들과 혼인을 통한 교유관계를 구축했다. 정홍서의 아들 鄭光淵 역시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에 참여하는 등 경상우도의 반서인적 정서와 상반되는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바탕에 부친대부터 지속되었던 서인 가문들과의 중첩된 혼인과 그를 바탕으로 한 인적네트워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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