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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 (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30호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233 - 277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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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임진왜란 직전 己丑獄事에 연루되어 정치적으로 숙청되었던 남명학파의 집권세력으로의 위상 제고 과정을 옥사 확대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선조의 역할에 주목하여정리한 것이다. 선조 23년 鄭汝立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문초를 받던 崔永慶이 옥사하는 등 기축옥사가 확대된 것은 연루자에 대한 색출 의지를 표방한 선조의 강경한 입장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북인들이 의병 활동으로 큰 전과를 거두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선조 27년 최영경은 대사헌으로 追贈되었는데, 기축옥사를 무옥으로 규정한 데 따른것이었다. 하지만 정철과 성혼의 관작삭탈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것이었다. 정철은 붕당을결성하고 임진왜란 당시 명에 사신으로 가서 독단적인 행위를 하여 선조의 권위를 무시하여 조정을 떠났고, 성혼은 임진왜란 당시 御駕를 맞지 않은 혐의에 화친을 주장한李廷?을 옹호하는 발언을 계기로 조정에서 떠났다. 이들의 사망 후 남명학파는 기축옥사에 대한 이들의 책임성을 부각시켰으며, 선조는자신의 관련성을 부정하고 정철과 성혼의 관작을 추탈함으로써 이를 공인하였다. 그 결과 정철은 현인을 모함하는 奸臣으로, 성혼은 그에 偏黨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는정철과 성혼을 구심으로 하는 서인의 국가운영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에따라 선조후반에는 남명학파가 국가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국 개편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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