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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훈 (쌘뽈여자고등학교 교사)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61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171 - 212 (42page)
DOI
https://doi.org/10.46639/kjds.20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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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지역은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시기에 공주전투 이후 후퇴하는 동학농민군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역이다. 논산에서 남북 접 동학농민군이 결성되어 공주성 전투에 나섰고, 후퇴한 동학농민군 이 논산 곳곳에서 전투를 치러 진격과 후퇴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다. 전라도 전봉준 중심으로 바라보던 동학농민혁명의 시선을 돌려 전국 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맥락에서도 논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사 연구는 필요하다. 이 연구는 2차 기포 시기에 남북접 연합 동학농민 군이 결성된 소토산과 연산 전투, 노성 봉화산 전투, 소토산·황화대 전투에 한정하고자 한다. 1984년 6월 일본군이 조선 침략을 위해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 자 동학농민군은 2차 봉기에 나섰다. 남북접 연합 동학농민군은 논산 소토산에 집결하여 연합군진을 형성하여 서울로 진군했다. 그러나 동 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관·일본 연합군에 패해 물러났다. 동학농민군 본진은 노성에 잠시 머물며 전열을 가다듬고 새로운 진격을 준비했다. 대지휘소에서 정치적 선전 작업을 펼치는 한편, 수습 된 동학농민군 두 정예부대를 투입했다. 연산 전투에는 청주에서 패하 고 내려온 김개남군이 합류함으로써, 우금치 전투 이후에 벌어진 첫 번째 전투이자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동학농 민군은 신식 무기로 무장된 관·일본 연합군에 패했고, 계획했던 전투 전략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학농민군은 관·일본 연합군의 추격을 예상하고 노성 봉황산을 거 쳐 서둘러 논산 소토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소토산은 남북접 연합군이 새 진영을 펼치고 대지휘소를 설치했던 곳이다. 관·일본 연합군이 신 식무기를 앞세워 소토산을 향해 세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오자 동학농 민군은 방어에 더 유리한 인근의 황화대로 다시 진을 옮겨 항전에 들어 갔다. 그러나 구식무기에, 사기마저 꺾인 동학농민군에게 전투다운 전 투는 수행하기 어려웠다. 전열이 삽시간에 무너지며, 서둘러 전주 방 면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은 원평전투와 태인전투를 끝으로 해산했다. 그리고 논산 지역 동학농민군은 가혹한 토벌전에서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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