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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은주 ((재) 한국국학진흥원)
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31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39 - 16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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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에서 17세기로 넘어가던 조선의 문단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려는 힘과 다양성으로 나아가려는 반동의 힘이 작용 반작용을 거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도본문말의 성리학적 문학관이 팽배하던 시기에 문장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긍정했던 이들이 나타나 도와 문의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면서도 점차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蒼石 李埈(1560~1635)은 이러한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이준은 학파적으로는 서애 유성룡의 문인으로 퇴계-서애 학맥을 계승했고 지역적으로는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영남인에 해당했으며 당파적으로는 남인에 속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관직 생활로 인해 서울 출신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그들과 시문을 주고받는 등 문학적 영역의 차원에서 일정 부분 영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입각해 본고는 이준의 문예 인식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어떤 배경 속에서 어떤 양상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살펴보려 한 것이다. 이준은 근본적으로 ‘도본문말’의 관점을 고수했지만 한시 창작에 임해서는 한시 자체가 가지는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多作으로 나아갔다. 또한 풍류와 흥취가 주를 이루는 詩會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또 참여했다. 이준의 이러한 행보 때문에 정경세는 이에 대한 우려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준은 문예 인식에 있어 도학자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한시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유연하고 확장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한시는 위로의 수단인 동시에 교제의 수단이었다. 내면의 불평한 기운을 토로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어떤 구애도 없이 동료 및 벗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물이었고, 함께 모여 시름을 잊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도록 화합의 장을 만들어주는 근본적 요소였던 것이다. 도학자로서 도와 문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했지만, 이준은 그의 저술 곳곳에서 한시의 기능과 필요성을 은연중에 드러냈으며 동시에 이러한 생각이 실제 한시 창작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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