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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해응 (호남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31 - 6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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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문헌기록과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전라도 읍성의 체성 축조방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고려 말부터 본격적으로 축조되기 시작한 읍성은 1438년에 ‘축성신도’를 반포하여 일정한 규식에 따라 수ㆍ개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1910년대 읍성철거령과 도시화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어 성벽의 축조방법은 문헌자료에 기록된 단편적인 내용만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일부 지자체의 읍성이 복원되면서 성벽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다양한 축조방법이 보고되었다. 문헌기록에 나타난 축성방식과 발굴조사된 자료를 비교하여 전라도 읍성의 일반적인 체성 축조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읍성은 왜구의 대비책과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축조되는데 전라도의 29개소에서 확인되었다. 축조위치는 왜구의 상륙이 용이한 연해지역의 행정치소의 중심에 많이 축조되는데 왕권이 강화되는 시점에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전라도 읍성 중 현재 성벽이 남아있거나 발굴조사를 통해 축조방법이 확인된 것은 10여 개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체성은 외부는 석축, 내부는 내탁으로 이루어졌으며, ‘축성신도’의 축성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성벽은 노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변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축조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축조되었다. 이는 성벽 축조시에 노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읍성의 성벽은 폭 8.0m 이내로 축조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외부는 석축, 내부는 내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축부는 폭 3.0∼5.0m 이내로 이루어지며, 내ㆍ외벽이 모두 수직으로 쌓은 것과 내벽을 계단식으로 쌓는 것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양상은 성벽의 축조방법의 변화라는 문헌기록도 있지만 발굴조사에서 보면 특정 구간에서만 확인되어 기능적으로 달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체성 내부는 내탁으로 이루어지며, 비스듬하게 흙으로 쌓고 있다. 내탁부가 형성되지 않는 구간은 자연 구릉으로 인해 성벽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구간은 외부를 ‘L'자형으로 깎아 석축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성벽에 비해 훼손상태가 심하기 때문에 확인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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