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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철 ((재) 한국국학진흥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1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69 - 9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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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는 1575년(선조 8)에 시작된 ‘동서 분당’의 한 절정에 해당한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그 희생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이다. 정개청 사건에 대해서 이제까지 가장 큰 논란은 위관(委官) 정철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개청에 우호적인 측은 물론, 많은 사람들은 정철이 정개청 죽음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생각했다. 하지만 정개청 옥사에 대한 정철의 책임 여부는 긍정과 부정 어느 한쪽으로 답하기 어렵다. 정철에게 책임을 묻는 측에서는 정철이 이 사건을 음모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그런 주장의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 정철이 「절의청담변」의 취지를 왜곡해서 ‘배절의’ 논의를 일으켰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절의청담변」만큼이나 정개청 사건에 영향을 준 것은 정개청과 박순 관계, 혹은 그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요컨대, 정개청이 스승 박순을 배신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이 정개청을 죽음으로 몰아간 배후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 관계를 그토록 악화시키고, 정개청을 죽음으로 몰아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도 당시 치열했던 동서 갈등 때문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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