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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범환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68輯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107 - 137 (31page)
DOI
10.37981/hjhrisu.2023.12.6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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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당에서 의자왕의 후손들이 어떻게 家格과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여 나갔는가 하는 것에 관하여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부여융의 손녀가 괵왕 이옹과 혼인한 것과 부여풍의 딸이 조인본과 혼인하고, 또한 그의 외손녀인 천수군 부인이 원건요와 혼인한 사실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부여융과 부여풍은 의자왕의 아들이었으나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여 부여융은 당왕조에 복무하였으나 부여풍은 당 왕조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 부여풍은 사로잡혀 영남으로 유배되었다. 그렇지만 부여융은 동생인 부여풍 가족의 후견인 역할을 하였고, 나중에는 부여풍의 딸을 당의 관리인 조인본과 혼인시켰다. 부여융은 백제왕실의 후손이 당에서도 계속해서 대우받고 살아갈 방법을 여기에서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조인본과 혼인하였던 부여씨 부인은 남편이 사망한 후 홀로 지내면서 딸인 천수군 부인을 재상의 아들인 원건요와 혼인시켰다. 이와 같은 혼인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부여융의 후손들이 측천무후 시대에서 정치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더 나아가 천수군 부인의 아들이 현종의 사위가 된 것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의자왕의 증손녀인 부여태비는 괵왕 이옹과 혼인하였다. 부여태비의 이러한 혼인은 부여융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였기에 가능하였고, 원건요와 혼인한 천수군 부인의 역할도 컸다. 더구나 부여태비의 언니는 재상 집안에 시집을 갔으므로 여동생이 이옹과 혼인하는 데 있어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고 여겨진다.
망국의 후손들이 당에서 집안을 유지하며 왕실이나 혹은 고관의 자식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은 부여융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으며, 부여풍의 후손을 내치기보다는 보듬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 배척하는 대신 화합하였기에 이와 같은 혼인이 성립될 수 있었으며 계속해서 당에서 부여씨 왕실의 맥을 유지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부여융과 부여풍의 행보
3. 부여씨 부인의 혼인과 부여융
4. 천수군 부인과 원건요의 혼인
5. 부여태비와 이옹의 혼인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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