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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종수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191 - 21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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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기반 위에서 철종 시기 성·휘주만 정책에 대한 기존 해석을 검증하였다. 그 결과 성주 부근의 여러 堡寨들이 폐지된 일은 실제로 元祐 3년(1088)에 발생한 것이지 元符 3년(1100)의 일이 아님을 밝혔다. 그러나 원부 원년에도 여전히 성주가 다시 설치되지 않았으므로, 紹聖·원부 연간 성·휘주에서는 ‘개변’이 실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북변과 비교하면, 원우 연간의 ‘기지’는 성·휘주와 서북변 두 곳에서 모두 출현하였으나, 서북변과는 다르게 성·휘주에서는 소성·원부 연간의 ‘개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기지’란 개념이 전하는 인상은 단순히 하나의 이념적 의론이란 점이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대한 전략적 판단, 故事, 漢化 정도 등의 요소에 따라 ‘기지’가 실제로 시행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원우 연간의 ‘기지’론자를 탄핵하는 것을 통해 소성 초 新黨 인사의 ‘개변’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西夏와 靑唐의 사례는 ‘개변’이 송조의 실행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그 대상이 송조에 가지는 태도와 그 내부 정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어도 소성·원부 연간에는 ‘親宋’적 입장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송조는 성·휘주의 楊氏가 또 다른 ‘府州 折氏’가 되기를 기대하였고, 그리하여 ‘개변’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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