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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항녕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3호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281 - 31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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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우암 송시열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적은 데 비하여,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문집 편찬과 간행에 대해서는 전에도 해제나 논문으로 다룬 적이 있었다. 본고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오류나 출처가 불분명한 데가 있어서 바로잡는 한편, 세 차례에 걸친 문집의 편찬, 간행 및 중간의 계통에 주목하였다. 아울러 송시열의 문집 간행이 조선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편찬의 배경에 유념하여 살펴보았다.
문집의 간행이 보통 그러하듯이, 송시열의 문집도 단행본류와 시ㆍ상소ㆍ편지 등의 시문류가 따로 편찬되었다. 그러고 시문류가 문집을 구성하는 것이 상례였다. 본고에서는 단행본류의 간행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면서, 송시열이 남긴 시문류, 즉 문집의 편찬에 주목하였다.
송시열이 세상을 뜬 뒤 바로 시작된 문집의 편찬은 그의 수제자인 權尙夏가 주도하였다(黃江本). 여기에 후손인 宋疇錫이 힘을 합쳤고, 서울 지역에서는 李喜朝와 金昌協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권상하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문집 편찬은 『家禮源流』 사건을 전후하여 이희조 주도로 넘어가고, 그 결과 교서관에서 1719년에 『尤菴先生文集』(芸閣本)이라는 명칭으로 간행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에는 별집 3책과 ‘경례문답’ 10책이 더 추가되었다.
그러나 『우암선생문집』(舊集)에 수록되지 못한 시문류가 많았으므로 ‘우암선생후집’으로 남아아있기도 했다. 따라서 송시열 문집의 재간행 여론이 계속되었다. 正祖는 즉위 초부터 송시열 문집의 재간행을 지시하였다. 이는 ‘右文左戚’의 淸流 士林政治를 추구하려는 그의 정국운영 구상과 맞닿아 있었다. 송시열은 그에게 名義와 春秋人義의 표상, 峻論 蕩平의 표상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宋子大全』(新集. 箕營本)은 정조 득의의 탕평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1787년(정조 11)에 정조가 주도한 교정을 거쳐 편찬, 간행되었다.
한편 華陽書院에 보관 중이었던 『송자대전』 목판은 정미7조약에 항거하여 일어난 의병을 토벌하던 일본군에 의해 소각되었다. 이에 1927년에 다시 『송자대전』을 중간하였고(南澗本), 이후 1928년(서울)에도 간행하였다. 1935년(남간정사)에는 宋德相에 대한 기록을 수정하여 간행하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미처 각 판본의 내용상의 차이까지 규명하지는 못하였다. 문집 자료가 학문연구에 제대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각 판본의 구성, 목록 대조, 내용비교 등의 교감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본고에서 다룰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보완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송시열처럼 정치변동의 와중에서 살았고, 사후에도 그 변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우암선생문집』의 간행
3. 『송자대전』의 간행
4. 『宋子大全』의 重刊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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