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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봉환 (본대학)
저널정보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신학전망 신학전망 189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109 - 13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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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은 수단을 언제부터 입기 시작하였을까? 초세기부터인가 아니면 최근에 고안된 것인가? 서방에서 사제 복장과 세속 복장이 구별되기 시작한 것은 6세기이며, 그리스도교 박해의 종식과 수도원 운동의 영향 그리고 이민족들의 침입은 복장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평신도들이 대체로 실용성 때문에 이민족들의 짧은 복장들을 입기 시작하면서 성직자들의 복장과 구별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사제 신분의 품위와 단정함을 보호하려고 로마인들이 입었던 흰색의 긴 겉옷을 보존하였다. 6세기부터 성직자들에 의해 도입된 전통과 관습은 점차 교회규범들 안에서 확인되고 조정되었으며 여러 교회회의들을 통해서 사제복에 관한 지침이 법률로 규정되었다.
마콩 교회회의(581)는 처음으로 세속 복장의 사용을 성직자에게 금하면서 이민족들에 의해 도입된 새 유행 복장인 사굼(sagum)을 언급하였다. 동방에서 트룰라눔 공의회(691)는 성직자에게 세속 복장 사용을 금하면서 도시에 있거나 여행 중에도 고유한 복장을 입도록 하였다. 레겐스부르그 교회회의(742)는 사굼 착용에 대한 금지를 새롭게 하였고 카술라(casula)나 투니카(tunica)를 입도록 하였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는 온갖 허영과 화려한 장식은 전적으로 사제 신분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성직자들은 단정하고 겸손한 옷을 입도록 강조하였다. 나르본 교회회의(589)에서는 성직자들의 품위와 단정함에 어울리지 않는 자색을 금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에 길고, 터져 있지 않고, 화려한 장식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색상의 의복을 성직자들에게 권하였다. 그러나 어떤 보편적인 규범도 사제 복장의 형태와 색상에 관한 정확한 지침을 여전히 제시하지 않았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590-604)이 보낸 일부 서간들에서 ‘사제 복장’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사제 복장과 세속 복장을 구별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제 품위에 대한 그릇된 해석은 단정한 성직자들의 복장이 성직자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사치와 허영을 위한 기회로 여겼다. 그 결과, 특히 12세기에 이미 앞서 단죄받았던 그런 남용들이 나타났고 이런 남용들에 대한 질책을 찾아볼 수 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사제 복장과 세속 복장 구별의 기원
Ⅲ.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교회의 문서들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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