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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8집
발행연도
2016.3
수록면
35 - 7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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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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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는 1929년부터 ‘제1기 부산 하수도 건설사업’(이하 제1기 사업)이 진행되었다. 제1기 사업은 1927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부산부협의회에서 50만 5천 원 규모의 5개년 공사를 내용으로 하여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후 1929년에 총 공사비 26만 원의 3개년 사업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사업구역은 대창정, 본정, 서정, 부평정, 서부평정, 좌등정, 영정이었다. 이들 지역은 일본인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었으며, 상업 중심지였다.
사업 내용이 확정된 이후, 192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는 본정, 서정, 부평정, 서부평정, 영정, 좌등정, 대창정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1기 사업은 1932년 종료되었고, 소요된 공사비는 25만 6500원이었다. 부산부는 사업 종료 이후 독자적인 세출 항목으로 「하수비(下水費)」를 편성하여 하수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제1기 사업은 이전의 하수도 공사와 마찬가지로 민족 차별적인 성격을 띠어 조선인 거주 지역을 제외한 채 이루어졌다. 조선인들은 부산에서 일본인 거주지 외곽에 주로 거주하였다. 이들 지역은 낙후된 지역이었으며, 도시 기반시설건설에서도 배제되었다.
이와 같은 민족 차별적인 시정(市政)에 대한 조선인들의 불만 표출의 한 사례가 1934년 부산부회에서의 조선인 의원 사퇴였다. 1934년 부산부회에서 조선인 의원들은 조선인 지역의 위생 시설 확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는 부회 내에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이루어지지 못했고, 의원들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인 의원 사퇴는 이후 부산부의 설득에 의해 끝내 철회되었지만, 부산의 조선인들이 도시 기반시설 정비를 절실하게 원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개항 이후 1920년대까지의 부산 하수도 건설
Ⅲ. 사업의 수립과 시행
Ⅲ. 사업의 한계와 조선인 배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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