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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태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49輯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55 - 9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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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는 신학생 때인 1842년에 프랑스 함대를 타고 조선으로 들어오려다 실패하였다. 1845년 부제로서 육로로 조선에 입국하였던 그는
서해를 건너 중국에 들어간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신부가 된 그는 조선에서 타고 갔던 배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귀국한지 얼마 안 되는 1846년에 그는 백령도 부근을 거점으로 해서 조선과 중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입국로를 개척하려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바다와 함께 살다가 순교한 사제였다고 일컬을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김대건 신부의 서해를 통한 선교사들의 입국로 개척에 대해서는 최근에 들어와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페레올 주교가 구상하고, 김대건 신부가 개척하였기에 가능하게 되었다고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해로를 통한 입국로 개척에 대해서는 새롭게 다룰 측면이 있다.
우선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의 활동은 그 보다 앞선 선교사들이 시도한 해로 개척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김대건 신부의 활동이 주도적이거나, 능동적으로 제대로 그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해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던 김대건 신부에 의해서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로 입국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을 새롭게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배로 조선에 입국하는 문제에 대해서 망설였다. 김대건 부제가 중국으로 타고 온 배가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서해를 건너서 갈 수 있는 배로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김대건 신부의 항해 지식이나 해로 개척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이들은 조선배가 아니라 중국배로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희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건 신부는 조선의 배로 두 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태워서 입국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새로운 지도 작성을 바탕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백령도 부근을 통해서 조선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개척하였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브뤼기에르 및 앵베르 주교의 해로 입국 모색
3. 김대건 신학생의 프랑스 군함을 통한 해로 입국 좌절
4. 김대건 부제의 조선 배를 통한 서해 횡단과 재입
5. 김대건 신부의 백령도 부근을 통한 새로운 입국로 개척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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