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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희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6권 제2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35 - 53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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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하면 일반적으로 조선의 왕실, 그리고 핵심적인 양반 성관(姓貫)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씨만 보고서 양반으로 분류해버리는 것은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전주이씨 가계 가운데서도, 구체적으로 사료를 검토해보면 일반적으로 중인들이 응시했던 잡과에도 응시해 합격자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전주이씨 가계의 잡과 합격 현황을 살펴본 다음, 잡과에 진출한 전주이씨 집안에 대하여 주목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제2대 임금 정종(定宗)의 제13남 장천군파(長川君派) 이택기 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잡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기술관으로서의 입지를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고위직 기술관으로 진출할 수 있는 관직의 길을 담보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검토를 통해서, 같은 성관이라 할지라도 파(派)를 달리하면 그 후손들의 신분과 위상이 미묘하게 달라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왕실의 후손들 가문에서 잡과에 진출해 잡과중인 가계를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잡과중인 형성 과정에서 전주이씨 가계가 어떤 비중과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조선 왕실 후손들이 잡과시험을 통해 잡과중인 집안으로 변모하여 생존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 특히 후기의 경우, 성관만으로 신분, 양반과 중인 등을 단정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같은 성관이라 하더라도 파(派)에 따라서 후손들의 신분과 위상이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사회적 신분과 사회변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례 연구와 더불어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분석,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목차

국문 요약
Ⅰ. 머리말
Ⅱ. 전주이씨 잡과 합격 실태
Ⅲ. 장천군파 이택기 가계의 잡과 진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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