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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7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17 - 24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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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명청 왕조 교체는 ‘중화’인 명조(明朝)가 ‘이적(夷狄)’인 청조(淸朝)에 의해 멸망하여 천하에서 중화가 소멸한 사건이었으며 청조의 무력에 굴복한 조선은 청조를 중심으로 하는 조공책봉질서에 편입되지만 관념적으로는 ‘청=이적(夷狄)’, ‘조선=중화’론이 태동하게 된다. 그러나 명조 멸망 이후 청조가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하자 조선의 유자(儒者)들은 ‘이적’의 전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에서는 두 가지 사상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이며 또 다른 사상적 흐름은 선진적인 청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이다. 그런데 18세기 초 청조를 직접 방문하여 기행문 󰡔노가재연행일기󰡕를 남긴 김창업의 청조에 대한 인식은 ‘조선중화주의’와 청조의 선진 문물을 긍정하는 ‘북학론’이 교차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론을 주창하여 청조에서 오랜 기간 포로 생활을 한 김상헌의 직계인 김창업은 조선의 ‘예악문물(禮樂文物)’의 우월성을 마음껏 자랑하면서도 ‘대청복수론(對淸復讐論)’ 대신 청조의 실용적인 문물에 대해서는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북학론은 갑자기 등장하는 사상이 아니라 대청사행으로 청조와의 교류 및 선진 문물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축적되면서 점진적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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