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은경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66집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39 - 77 (3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조선이 청 도자기를 비롯한 청 문물에 대해 가진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시기별로 그 양상을 파악해보고자 시도되었다. 조선의 도자기를 포함한 청 문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크게 ‘부정적-제한적-적극적’ 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胡亂 후 교섭이 개시된 仁祖4년(1626)부터 景宗4년(1724)까지만 하여도 명에 대한 ‘再造之恩’과 청에 대한 北伐論이 팽배하여 청 문물의 유입 자체를 꺼렸다. 英祖元年(1725)부터 正祖14년 (1790)의 기간 동안 옹정~건륭시기 연행을 통해 안정된 청나라의 정세를 실감하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다. 하지만 여전히 청 문물에 대한 거부감은 남아있었으며, 英 · 正祖의 근검을 숭상하는 정책은 청 문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야기하였다. 아울러 사치스러운 물건이라 하여 받아들이되 제한적 수용 태도를 취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조15 년(1791)을 전후로 청 문물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태도의 변화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惠慶宮 洪氏 回甲宴(1795)에서 총 120점의 중국산 그릇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는 동일한 연회에 사용된 조선 관요 생산의 갑번사기 37점의 3배를 넘는 수량에 해당한다. 조선의 적극적인 청 문물 수용과 소비 행태는 조정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唐物’의 수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등 범람하는 청 문물에 대한 우려가 표출되게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세기까지 이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전보다 자유로운 청 문물에 대한 접근은 19세기 전반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청을 객관적 대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이는 청의 문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선별적 수용이 시작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도자를 포함한 다양한 청 문물은 더 이상 진귀하고 놀라운 대상이 아니라 생활상 익숙한 물건으로 그 위치가 재조정되는 경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청 교류의 展開와 청 문물의 유입 : 1623年頃~1724年頃
3. 청 문물의 제한적 수용 : 1725年頃~1790年頃
4. 청 도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 1791年頃~1896年頃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3567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