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7 - 135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학봉 김성일이 일본사행단의 부사로서 1590년 3월 5일 폐사(陛辭)하여 1591년 3월 1일 복명(復命)하기까지의 정황을 기록한 『해사록(海槎錄)』은 조선 전기에는 그것 자체로 매우 귀중한 일본 사행록이다. 국제관계에서 외교는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그 실상은 자국의 실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명분 역시 대상이 있는 외교의 특성상 상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고려는 결국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 점에 있어서 학봉은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설득의 상대를 파악하고 있는가는 간과할 수 없다. 학봉은 사신의 행차는 나라와 조정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여 체모(體貌)를 세우고 전례(前例)를 확립하는데 치중했다. 그것은 외교적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실리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적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되짚어 본다는 측면에서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2년 뒤 닥쳐올 임진왜란이라는 동아시아 역사 전환의 사건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일본을 다녀온 학봉 김성일의 사행기록, 『해사록』은 국제관계에 대한 합당한 시각의 정립이라는 논점에서 재독의 의미가 충분한 것이다. 일본과의 외교적 의례에 대해 학봉이 보여준 시중(時中)인식은 당대적 의미 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도 적지 않다. 학봉은 일본에 대해 영활한 존재로 파악하고도 정당한 대화의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르쳐야할 대상으로 보고, 덕화를 전하고 감화시키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신을 내조사(來朝使)로 이해한 일본에서 학봉의 그러한 태도를 불편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학봉은 자신만의 선입견으로 일본을 한 수 아래로 여겼으며 일본의 발전된 문명을 보고나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는 상대에 대한 정당한 파악이나 온당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봉이 일본 사행에서 외교적 의례에 정당함을 요구하고, 새롭게 파악한 상황에 맞추어 적극적인 조문을 해석하며 외교사절로서의 체통을 지키려한 당당한 자세만큼은 여전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외교의 문제는 실리의 관점을 포기할 수 없지만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명분을 들고 전례(前例)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 있어서 학봉은 선위사, 영외배, 답서의 문제 등의 외교 의례에서 국가간 항례로서의 정식을 수립하려 했는데 이는 높게 평가할 만 하다. 학봉의 깐깐한 문제제기는 이후 진행된 통신사 행차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전례가 되었다. 100년 만에 부활된 외교 행차에서 학봉은 매우 중요한 의전들의 선례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중의식은 이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후 조선에서의 학봉에 대한 고평은 바로 이런 점에서도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