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5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43 - 267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94년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들은 이후 동학농민군들은 동학 재건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1905년이후에는 동학이 재편되는 천도교로 입교하여 교단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동학에서 큰 활동을 했던 인물들은 교단에서 진행한 독립운동에 주도적인 참여를 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도 크게두드러지는 활동을 했던 인물들에 한정되어 활동상이 파악되는 것에 그쳤다. 반외세라는 기치를 걸고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그 혁명에 참여한 동학교인의항일, 독립운동으로의 과정을 통해 이념을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라북도 임실 출신 ‘이병춘’이라는 인물을 통해 동학농민군이 3.1만세운동에 어떻게 연관되어 참여하였는지 추적해보려고 한다. 이병춘이라는 인물은서울 탑동공원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을 계획하였을 뿐 아니라 참여하여 징역 3년을 언도받았고, 출옥 이후에도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송금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이러한 공로를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 사실 이외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이병춘은 20세 중반 동학을 믿게 되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평생 동안 동학과 천도교단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20세 중반 동학농민혁명 참여를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귀결되었음에도 꾸준히 동학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동학의 재건활동에 힘을 쏟았다. 이후 1905년을 기점으로 동학이 천도교로 재편되면서도 교단에서 중요한직책을 맡으면서 교단의 핵심 인물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런 그가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3.1운동에서는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으로 5년이라는 기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이 핵심적인 활동이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은 향후 연구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병춘은 3.1만세운동과 관여된 활동으로 옥고를 치룬 이후에도 꾸준히 교단에서 활동을 전개한다. 그 활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천도교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다. 또한 그가 당시 4세 교주였던 박인호를 지지하였다는 점은 구파가 전개한 비타협 운동노선에 함께 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병춘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학교인들은 천도교에서도 꾸준히 종교활동을 포함한 교단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