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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10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17 - 266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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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곡 홍서봉은 선조대에 태어나 임진왜란을 겪고, 광해군~인조대에는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와중에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선비의 절개를 꿋꿋이 지키며 살아간 인물이다. 당시는 선조대 사림정치가 붕당정치로 발전하였고, 인조반정으로 폐모론을 주도하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한 뒤에는 사림과 산림들이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시행하여 가는 시기였다. 홍서봉은 선조 27년(1594) 23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에 벼슬길에 나갔다. 그러나 광해군과 북인 정권이 궁궐을 5개 지으며 재정을 탕진하고, 김직재 무옥 등 역모를 조작하여 사림들을 죽이고 몰아내며, 급기야는 폐모론을 일으켜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 정국이 혼란해지자 이를 바로 잡고자 김류·김상헌·이후원·조속 등과 반정을 도모하여 인조반정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 윤리를 회복하려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 때 화의를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실무를 수행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이후에도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인조대의 복잡한 대내외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국왕을 적극적으로 보필하였다. 인조 23년(1645) 청나라에서 귀국한 소현세자가 급사하자 세손이 계승하는 것이 상도(常道)라고 주장하였으며, 이 해에 졸하였다. 이렇듯 홍서봉은 중국의 명·청이 교체되는 시기에 조선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한 개혁적인 사상가였으며, 이러한 노력을 후손들과 제자들이 이어받아 조선 후기 영·정조 문예부흥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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