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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0집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175 - 215 (41page)
DOI
10.18496/kjhr.2015.04.5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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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세를 청에 보고하는 외교문서/외교적 행위’ 즉 倭情咨文은, 보고의 주체는 조선이고 보고의 수신자는 청, 보고의 내용은 일본이었다. 외견상 청의 압력에 타협적으로 순응한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인 왜정자문은 동아시아 역학구도 상정과 외교전략 모색의 산물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 조정은 倭情을 청에 移咨함으로써 倭情可慮/可疑에 대한 조?청 간 전략적 공감대 형성을 시도하였다. 즉 대청 왜정보고를 통해 ‘備倭論’의 명분을 확보하고 외교적 대응책으로 활용한 것이다.
비왜론은 일본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과 청의 공통된 입장으로 인해 인조대 말까지 효력을 유지하였다. 인조 정권과 청조정의 원만한 관계 역시 청이 비왜론에 제동을 걸지 않았던 요인이었다. 비왜론은 외교상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는데, 제약을 받고 있던 군비확충에 대한 1645년 청의 묵인?승인 조치가 그것이다.
그러나 효종 즉위 직후 비왜론의 전개는 청의 査問이라는 혹독한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對日?對淸외교전략으로서 효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처럼 청의 태도가 돌변한 배경으로는 효종대 초반 친청세력의 실각이라는 정국 변동과, 청의 판도 변화에 따른 대일 경계심의 완화라는 대내외적 요인을 들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인조대 후반 왜정자문을 통한 對淸 備倭論의 전개
3. 병자호란 이후 동아시아 역학구도 상정과 왜정자문
4. 효종 즉위 초반 왜정자문을 통한 비왜론의 한계 노정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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