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7輯
발행연도
2020.7
수록면
105 - 150 (4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92년 8월 24일 일본 법륭사(法隆寺)에서 경내 문화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구리(高句麗)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상이 발견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7세기 인물화는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 (622년)과 다까마쓰(高松) 고분의 벽화(7세기 말부터 8세기 초)밖에 없다. 또 먹으로 그린 그림으로는 1988년 같은 절에서 ‘비선도(飛仙圖)’(7세기 전반)가 발견되었지만, 먹으로 그린 세속의 인물화로는 이번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고 해서 학계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1992년 인물상이 발견되고 2년 뒤인 1994년 당시 조사위원장이었던 마찌다 아끼라(町田 章)가 간단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한다. 그 뒤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연구가 별로 없었다. 이 논문에서는 1994년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 논문은 Ⅱ장에서는 1992년 고구리(高句麗) 인물화가 발견된 뒤 발표된 자료들을 모아보았다. 아직 본격적인 논문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가능한 자료를 모두 모아 소개하였다.
Ⅲ장에서는 인물상의 국적과 그린 연대를 보았다. 인물상이 고구리(高句麗)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일본의 신문과 학계에서 인정하였기 때문에 글쓴이는 고구리 벽화를 바탕으로 그 논리를 보충하였다. 마찌다 아끼라(町田 章)는 1차 조사보고서에서 ① 623년에 만들어진 석가삼존불을 기준으로 623년을 상한으로 보고 ② 운기무늬(雲氣紋)나 운기무늬당초무늬(雲氣紋唐草紋)를 근거로 650년이 하한이라고 주장하였다. 글쓴이는 『성덕태자전 사기(聖德太子傳私記)』에 “아미따삼존불은 법륭사를 지을 때 약사여래삼존과 함께 만들어지고, 석가삼존불은 성덕태자가 세상을 떠난 뒤 두 불상에 더하여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607~650년으로 범위를 확대하였다.
Ⅳ장에서는 법륭사 고구리(高句麗) 인물상은 누가, 왜 그렸는가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요미우리신문 기사에서 황문화사(黃文畵師) 같은 고구리(高句麗) 출신 화가가 그렸다고 했다. 마찌다 아끼라(町田 章)는 1차보고서에서 ① 사람은 일본 화가가 일본에 온 고구리(高句麗) 사람을 그렸을 것이다. ② 고구리(高句麗) 사람이 자기 나라 풍속을 그렸다고 했다.
글쓴이는 법륭사 금당 아미따여래 대좌에 그려진 고리(高句麗) 인물화는 국가에서 임명한 불상 장인인 고리(高麗) 안작 조(鞍作 鳥, 구라쯔꾸리노도리)가 만들었고, 도리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마치 작품에 서명(sign)을 하는 것처럼 대좌 속에 그렸다고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1992년 법륭사(法隆寺) 고구리(高구麗) 인물화 발견
Ⅲ. 법륭사 대좌 인물상의 국적과 제작 시기
Ⅳ. 법륭사 고구리(高句麗) 인물상은 누가, 왜 그렸는가?
Ⅴ.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911-001092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