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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재운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9輯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135 - 15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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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발해의 교통로 가운데 하나인 신라도의 신라 측 구간의 노선과 이를 통한 교류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쓰였다.
발해의 교통로는 국가전략이 반영된 수로, 육로, 해로가 결합하여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新羅道는 발해에서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이르는 길이다. 신라도는 크게 육상교통로와 해상교통로로 나누어진다.
신라도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우선 발해와 신라의 경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발해 무왕 시기에 대동강과 원산만 방면으로도 진출하여 신라와의 경계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735년에 당나라가 신라에 보낸 칙서에 의하면, 신라가 발해에 대비해 浿江에 방어기지를 설치하고자 요청하였고, 당나라가 이를 승인하고 있다. 이를 보면 발해가 한반도의 서북쪽으로 이미 진출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동해안에서 신라와 泥河를 경계로 접경했던 시기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721년 7월에 신라가 하슬라도의 장정을 동원하여 북쪽 경계에 장성을 쌓았다는 것은 이 무렵에 발해가 이곳으로 진출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발해와 신라 양국은 적어도 721년에서 757년(경덕왕 16)에 주군현에 대한 정비 차원에서 국경을 확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로 발해와 신라와의 교통로를 동부와 서부, 육로와 해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동부교통로는 신라의 ‘北海通’에 해당한다. 그 구체적인 노선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동해안을 통했다고 보는 설과, 동해안 경유와 내륙경유 두 개의 루트가 있다고 보는 설이 있다. 문무왕 18년(678)에 北原小京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溟州街道에서 朔州街道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남북국시대 발해와 신라의 동부 육상교통로는 북해통 그 가운데서도 朔州街道를 통했다고 보인다. 한편 溟州街道는 對북방 국경 연락의 역할을 상실한 뒤에도 溟州의 치소로 향하는 지선으로 기능을 계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로 발해에서 신라로 가는 교통로인 新羅道는 크게 동쪽 노선과 서쪽 노선으로 나누어지고, 그 길을 통해서 사절단의 왕래와 민간인들의 교섭이 이루어졌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발해와 신라의 경계
Ⅲ. 발해와 신라의 교통로
Ⅳ. 발해·신라의 교류와 신라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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