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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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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창숙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3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89 - 11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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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문헌 연구로 구례 지역과 화엄사의 차 문화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 차 문화는 선종 유입과 도당구법승, 왕의 친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있다. 따라서 신라에 차를 들여온 계층은 도당구법승으로 선종의 수행법에 관심을 갖고 있던 승려들이 당에서 익힌 좌선법과 함께 차를 들여온 경향이 크다. 하지만 9세기에 이르러서야 왕실 귀족과 승려들 사이에 차가 확산 되었다. 흥덕왕(828)이 지리산에 차 씨를 심게 했다는 기록은 지리산을 차 시배지로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둘째, 구례는 차 생산지로서 조선 전기까지는 차를 토공했던 기록이 있으나 16세기 이후에는 주요 생산지역에서 빠져 있다. 셋째, 화엄사 장죽전을 차 시배지와 관련하여 검토할 수 있는 문헌은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세운 최초의 사찰이라는 점이다. 연기조사는 범승으로 법흥왕(544) 때에 화엄사를 창건했다. 이 당시 수행 중에 차를 마시는 것은 중국화 된 불교, 즉 남선종의 수행체계에서 형성된 풍토였다. 신라에 차 문화를 소개한 승려들은 남선종에 관심을 가졌던 도당구법승이다. 차와 수행이 융합된 시기는 혜능선사(638~713)가 소주를 중심으로 설법을 폈던 시기이다. 더구나 북방 사찰에서 수행 중 차를 마시는 것이 허락된 것은 8세기 무렵이다. 법흥왕때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고 동시에 화엄사 부근에 차 씨를 심었다는 점은 이 당시 신라에 차가 소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화엄사 장죽전을 차나무 시배지로 상정하기란 선종의 유입 시기와 문헌 사료를 고찰해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 신라에 차를 소개한 계층이 선종의 수행법에 관심을 가졌던 도당구법승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차나무 시배지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하지만 구례 지역과 화엄사가 차 문화에 미친 영향은 크며 고려와 조선 전기까지도 그 위상은 공고하다. 화엄사 주변에 산재한 차나무가 어느 시기에 파종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지, 차 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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