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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수 (성균관대학교) 박찬일 (경상대학교) 허성회 (부경대학교) 정재묵 (경상대학교) 김무찬 (해양산업연구소) 박주면 (해양과학공동연구소)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구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 인문과학 제7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35 - 176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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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 한국 대학의 어려운 현실에 당면하여 근대 이전 이와 유사한 성격의 고등교육기관을 되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중앙관학이던 성균관(成均館)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며 그 특성을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고려 충선왕은 원의 압박 아래에서 중앙관학을 성균감 혹은 성균관으로 명명하였다. 여기에 공통된 ‘성균’이란 호칭은 분명히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시(理想視)된 고대 학교의 이름으로 여겨진 이것은 당시 경서의 의미를 재해석하려던 신흥 사대부들의 주목 대상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부득이한 현실적 조건에서 전통의 권위를 빌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학문⋅사회 분위기를 수용한 묘책이었던 셈이다. 성균관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의 전통적 중앙관학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우리 스스로 이 성균이란 말을 좀 더 숙고(熟考)하고 그 주체적 이해를 심화시켜 나간다면, 이로부터 교육의 중요한 가치와 이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성균관은 학생의 교육만이 아니라 성현에 대한 제사 기능도 아울러 수행하여, 정치권력에 결부된 ‘치통(治統)’과 대비되는 학문의 ‘도통(道統)’ 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묘학제(廟學制)는 8세기 중국에서 확립되어 한반도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조선의 제도가 명⋅청 왕조와 동일하지 않다. 공자의 존호, 대성전(大成殿)에 모신 인물, 중앙관학의 학생만을 제사한 사현사(四賢祠)라는 특이한 사당이 그 좋은 예이다. 이는 한국의 묘학제가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기실 묘학제 자체가 정치와 구분되는 학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의 지성인들은 이를 이용해 적어도 예제상(禮制上) 중원 왕조의 정치적 속박을 벗어나 독자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본고의 내용은 한국의 전통적인 중앙관학이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면서도 독자적 정체성을 모색하였고, 이로 인한 변화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고자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함께 인식함으로써, 우리 모두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능동적으로 작금의 현실에 대응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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