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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국립고궁박물관 고궁문화 고궁문화 제15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21 - 15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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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사정전思政殿의 어칸御間 상단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붙어있었다. 이 벽화는 재질과 화풍이 왕실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0년 12월 문화재 위원회에서 그림을 떼어내 따로 보관하고 참고자료로 활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벽화가 왜 사정전에 설치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고에서는 〈쌍룡도〉 벽화의 설치 배경과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먼저 2000년 철거 당시의 문건 속에 기록된 배접용 낙폭지落幅紙 사진을 판독하였다. 낙폭지는 1866년(고종 3) 3월 실시된 정시廷試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추정되었다. 이를 통해 사정전 어칸 후열의 고주를 가로지르며 상단에 설치한 대형 장지는 경복궁 중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중국 자금성의 편전便殿 기능을 한 보화전, 건청궁, 교태전, 황극전 등에는 황제의 보좌 위를 〈오룡도五龍圖〉, ‘쌍룡희주雙龍戱珠’ 등의 용 그림으로 장식한 예를 볼 수 있듯이 경복궁 중건 당시에 청 궁정의 그림 의장 장식을 도입하여, 사정전 어칸 기둥 사이에 장지를 설치하고 그 앞을 용 그림으로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이 가능했다. 다음으로 〈쌍룡도〉 벽화의 제작 시기를 판단하기 위해 19세기 말 궁중에서 제작된 용 그림과 화풍을 비교해 보았다. 〈쌍룡도〉 벽화는 전통의 쌍룡희주 도상을 그렸으나, 공필의 진채로 그린 궁중 그림과 달리 먹을 위주로 음영과 입체감을 강조한 점 등이 일본의 〈운룡도雲龍圖〉 화풍에 가까웠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을 때, 사정전은 ‘박애관博愛館’이라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 있던 벽화를 떼어내고 하단의 판병과 어좌를 들어내는 구조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진회가 끝난 후에 조선총독부박물관의 부속 전시관으로 사용되면서 여백으로 남은 장지 벽면 위에 〈쌍룡도〉를 새로 제작해 붙인 것으로 판단된다. 1963년 경복궁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정전 구역에 대한 수리가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관람 구역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사정전 내부는 벽화의 종이가 찢어지는 등 훼손이 심해지자 1986년 벽화의 보존처리가 처음 있었다. 그리고 2000년에 그림을 부착했던 판벽과 함께 〈쌍룡도〉가 철거되면서 현 상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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