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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계영경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학회 美學(미학) 美學(미학) 제81권 제3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1 - 3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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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성리학적 국가의 건설을 표방하며 건국했다. 이는 실제 국초 개혁적 정책들에도 적용되어 토지제도, 과거제도, 교육제도 등에서 성리학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런 개혁은 국가적 예술 활동과도 연결되는데, 도성의 건축, 국가 의례의 정비 등에 있어 성리학적 예술관이 그 기준이 된 것이다. 또한 이런 성리학적 예술관은 지배층에 의해 일반 민중에게까지 전파되도록 도서의 간행과 배포 등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공적 차원에서의 예술 활동이 개인적, 사적 차원에서의 내재적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공적 차원과는 구분되는 예술 활동이 심지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사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조선 초기 성리학적 예술관은 개인의 내재적 차원의 변화까지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곧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의 경우 이중적 예술관을 보인다고 하겠다. 이는 특히 “여악(女樂)”의 문제와 관련하여 분명히 확인된다. 이런 이중성의 원인은 성리학자들의 환경, 성리학적 예술관 자체의 자연스럽지 못한 성격, 내재적 변화를 이끌어낼 동인의 부재로 생각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이념 변화와는 별도로 개인의 내재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실질적 동인이 조선 초기에는 부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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