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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인수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한민족문화학회 한민족문화연구 한민족문화연구 제53권 제53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437 - 46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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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시기 학병들은 일제 관헌의 강요에 의해 지원병 형식으로 황군이 되었다. 황군이 됨으로써 그들은 식민지 하위주체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입대 후 그들의 신체는 다시 일본군 내부의 하위주체로 재편됐다. 그리고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전쟁 포로를 살해하고 양민을 유린하는 자리에 끼기도 했다. 그것은 ‘보는 고통’과 신체적인 메스꺼움을 동반하는 경험이었다. 『1․20학병사기』에서 그들은 일본 병사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그리지만, 때로는 안위를 위해 일본 병사들과 타협하기도 했다. 학병들은 학생 출신 엘리트라는 점을 자긍심으로 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학병공동체를 형성했다. 학생 출신이라는 상징자본은 같은 처지의 일본인 간부나 병사와의 접점이 됐다. 그들의 학벌주의는 일본인과의 수상한 ‘우정’으로 이어졌다. 군부는 부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학병들의 인텔리 의식을 이용했다. 학병들은 자주 폐쇄적인 부대 내에서 학생 출신 일본 군인과의 거리를 실제보다 가까운 것으로 잘못 상상했다. 학병들에게 ‘탈영’은 그 자체로 반일의 증표였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 항일운동에 이른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탈영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 재판과 투옥으로 이어졌으며, 그 투옥체험을 근거로 ‘항일운동’이라는 상상이 강화됐다. 그러나 그들은 전후 책임의 문제를 미묘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졸병’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일본 군인이었고 살상이 일어난 장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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