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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현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51권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39 - 7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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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신라 소경에 대하여 공간과 물류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았다. 대체로 중고기 이후 특권적인 왕경인 혹은 왕도 거주민의 인구가 늘어난 반면, 영역의 구조상 지방의 물자를 수도로 가져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소경은 별도(別都)를 조영하여 왕경인의 일부를 멀리 떨어진 수취원 인근에 나아가서 살게 하면서, 그곳의 물자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소경에 거주하는 지배층은 왕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불리함이 있었지만, 비교적 풍족한 지방의 물자를 누릴 수 있었으며, 특히 신라에 투항하여 일정한 신분을 보장받은 이국 출신의 경우 왕도에 거주하기보다 특정 소경에 모여 지내면서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일부 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신라 국가는 소경을 통해 나라에 공을 세우거나 귀화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주면서 이들이 무분별하게 왕도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먼 지역의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통일기 소경은 대체로 군 정도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면에 따라 6개 혹은 그 이하의 부로 구분하면서 왕경의 6부명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경의 중심부는 격자형 가로로 구획되어 있었고, 인근에 산성을 축조하여 비상시 대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소경 중심부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9주 주치 중심부에 해당하는 상주 복룡동유적의 사례를 보았을 때 확실히 중상급 가옥이 밀집 분포하여 그 주민은 도시적인 경관 속에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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