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원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말글학회 우리말글 우리말글 제103집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337 - 366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에서는 <원우가(冤牛歌)> 생성에 관여한 동아시아 우언 전통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우가>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쾌산원우(快山冤牛)’의 고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 때 쾌산에서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 잠이 든 사이,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오자 소가 온 힘을 다해 주인을 지키는 데 성공했으나, 잠에서 깬 농부는 밭이 엉망이 된 것을 보고 오히려 소를 나무랐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원우(冤牛)’ 이야기는 조선 중기에 정치적으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16세기 말에 강항(姜沆)은 건저문제(建儲問題)로 동인의 공격을 받아 형 강해(姜瀣)가 죽고 자신도 옥살이를 하게 되자 <원우부>를 지어 자신과 같은 억울한 신하가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임금께 촉구하였다. 강항의 이 <원우부>는 당시 조선에서 ‘쾌산원우’의 고사를 활용하여 글쓰기를 시도한 최초의 것으로 유종원(柳宗元)의 <우부(牛賦)>, 배형(裵鉶)의 <영인전(甯茵傳)>, 한유의 <하비후혁화전(下邳侯革華傳)> 등 중국 당나라 문학을 두루 참고하여 지은 것이다. 이어 조희일(趙希逸)도 송유진(宋儒眞)의 난으로 부친과 함께 고초를 겪게 되자 <원우부>를 지어 그 억울함을 나타냈다. 또한 17세기 중반에는 윤선도(尹善道)가 예송 논쟁 끝에 유배를 가게 되자 <서회(敍懷)>라는 글을 지어 자신을 ‘쾌산원우’에 견주었다.
한편 19세기 초반 평양 기생이 필사한 기사총록이라는 가사집에는 <원우가>라는 가사가 실려 있는데, 이 작품은 조선 중기 <원우부>를 중심으로 ‘쾌산원우’의 고사를 활용한 글쓰기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하지만 <원우가>는 이전의 글쓰기와 일정한 차이를 갖기도 하는데, 원우를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고사성은 거의 퇴색하고 우의성만 남아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우의성의 측면에서도 주인과 원우의 대립 구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우의 억울함만 일방적으로 토로하고 있기 때문에 원우가 지시하는 것이 억울한 신하로 고정되기보다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애초의 <원우가>는 억울함을 당한 어떤 정치인에 의해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으나, 지금 현재 기사총록이라는 가사집에 수록된 현상만 놓고 보면 원우는 기생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 요약
1. 서론
2. <원우가> 내용 분석
3. 우언의 전통과 <원우가>의 성격
4. 남는 문제-원우(冤牛)와 의우(義牛)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5-02-09209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