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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천병돈 (대진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40호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151 - 17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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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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耕齋李建昇은 1858년 11월 28일(철종) 강화도 沙器里에서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나 1924년 2월 18일 67세에 西間島安東縣(현 丹東) 接梨村에서 돌아가셨다. 문집으로 『海耕堂收艸』(혹은 『耕齋集』이라고도 함)가 있다.
경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죽지 않으면 일본의 臣民으로 살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더구나 망명지의 생활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이런 이유로 경재의 학술사상은 체계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망명전에 보이는 그의 사상은 매우 분명했고, 그것을 생활에서 보여주었다. 이는 담원이 쓴 ‘耕齋丈’ 제문에도 보인다.
경재는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회복하고자 했으며, 망명 후에는 역사서를 통해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했고, 독립운동 열사들의 전기를 통해 이 민족정신은 ‘義’로 승화된다. 따라서 경재에게 있어서 학교와 역사서 그리고 독립운동은 한 나라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확립하는 ‘義’로 승화된다.
지금까지의 독립운동사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항거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경재가 기록한 항일의사들의 전기는 일본군에 대한 항거의 기록도 있지만, 그들의 의로운(義) 삶의 태도도 있다. 항일투사들의 민족정신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거가 아니라, 實心에서 나온 義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핍박에 항거하기 위한 ‘義’이다.

목차

【요약문】
Ⅰ. 들어가는 말
Ⅱ. 경재의 文集에 관한 몇 가지 문제
Ⅲ. 교육을 통한 민족정신 고취
Ⅳ. 書評에 나타난 민족의식
Ⅴ. 독립운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 - 「傳」
Ⅵ.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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