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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성은 (덕성여자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2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99 - 13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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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해평리의 오봉산에 있던 開興寺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융성했던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폐사지만 남아있다. 이 개흥사 향로전에 봉안하기 위해 조선후기 1680년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복장조사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어 강희 19년(1680) 色難과 皈一의 두 조각승이 제작한 것이 밝혀졌다. 두 명의 승려 가운데 수조각승을 맡은 색난은 조선후기 17세기말에 호남지역에서 크게 활약했던 대표적인 조각승인데 개흥사 관음보살상은 그가 수조각승을 맡아 제작한 초기작품으로서 색난의 초기 조각양식을 알려준다. 개흥사 관음보살상은 색난의 다른 1680년대 작품들처럼 양감이나 비례, 독특한 상호표현 등에서 색난 조각의 특징적 요소가 잘 나타나는 동시에 앞 세대 조각승인 인균과 삼인비구의 조각적 요소도 나타나고 있어 색난이 應圓–印均–三忍으로 이어지는 응원 인균파에 속하는 조각승일 가능성이 상정된다. 당시 남도 불교조각계에서 영향력있는 유파를 형성하고 있었을 인균과 삼인은 부휴선수, 벽암각성과 깊은 연관이 있었고, 색난의 출가사찰이며 근거지로 생각되는 능가사 역시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중창하고 지켜온 사찰이라는 점에서 상호 관련성이 발견된다. 특히, 색난은 인균이 1662년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화순 유마사 목조약사여래좌상(現전주 학소암) 제작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하였고, 1680년부터 85년까지의 5년간 색난의 조상작업에 3회나 참여했던 도헌 역시 인균의 보조조각승이었던 점도 이와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색난의 작품에서는 인균이나 삼인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요소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1650-60년대에 유행했던 조각적 요소가 반영되었거나, 當代유명 조각승이었던 無染派조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고려될 수 있다. 색난은 인균, 삼인으로 이어지는 응원 인균파 조각승으로서 기본적으로 이들의 조각기법을 계승하면서 기초를 쌓는 한편, 주변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무염파의 조각적 요소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조각승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목조관음보살좌상의 現狀과 조각승 色難
3.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양식분석과 色難의 계보 추론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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