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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공석구 (한밭대)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6輯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9 - 3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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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고구려로 이주해 온 중국계인물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문헌사료,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실상을 통해서 당시 고구려 땅에는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계 이주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왕성이나 그 주변지역에 살았으며, 또는 멀리 지방에 배치되어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본고에서는 특히 이주민의 실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자료 그중에서도 무덤자료를 검토하였다. 검토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이주민의 무덤양식에서 전통묘제를 변용하거나 거부한 흔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통적인 묘제를 襲用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사회문화적인 상황에 맞추어 무덤을 변용하여 축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왕성에 배치된 인물의 경우(우산하 3319호묘), 외부는 전통묘제인 적석총이었다. 하지만 무덤 안은 적석총이 아니라 전축분의 모습이었다. 이는 고구려의 행정력을 수반하는 직접지배를 받았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방에 배치된 인물의 경우는 낙랑・대방군고지에 남겨진 고고학 자료를 대상으로 하여 검토하였다. 전통묘제인 전축분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전축분에다가 석재라는 요소가 덧붙여진 현상이었다. 심지어는 전축분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석실봉토분을 새롭게 축조한 경우도 나타났다. 그들은 중원 여러 왕조의 연호(東晉, 後趙)를 채용하거나 또는 고구려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중국왕조의 관직을 채용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통해서 그 지역에 불어 닥친 사회문화적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변화상의 이면에는 고구려의 영향이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낙랑・대방군고지에서의 이와 같은 상황은 고구려의 행정 통치를 바탕으로 하는 직접지배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 땅으로 온 이주민
Ⅲ. 이주민의 몇 가지 사례 검토
Ⅳ. 무덤양식에 나타난 이주민의 모습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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