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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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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봉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양시은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70輯
발행연도
2021.7
수록면
65 - 9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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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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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평양이라는 고구려의 지방도시가 도읍으로 선택되고 오랜 기간 국가의 최고 행정중심지로써 경영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도시경관의 모습과 변화를 427년 평양 천도와 586년 장안성 이도를 기준으로 3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평양지역이 고구려의 주요 지방도시로 기능하던 1기의 경관은 낙랑구역의 재편과 대성구역의 신도시 조성이라는 큰 경관적 변화로 요약된다. 낙랑의 전통에 고구려의 문화 요소가 덧입혀지는 낙랑구역과는 달리 대성구역은 국내도성과 유사한 분위기의 신도시로 개발되었다.
2기는 평양지역이 고구려의 수도로 그 지위가 격상된 시기로, 대성구역이 왕도의 핵심이었다. 당시의 왕성은 대성산성, 궁성은 청암동토성이었다. 1기와는 달리 봉토석실분으로 묘제가 일원화되었는데, 왕릉급 고분은 초대형 기단봉토석실분이었다. 국내도성기와는 달리 도성의 외곽에 산재 분포하고 있는 이들 왕릉은 상징적 경관으로 기능하였다. 사찰은 주민의 결속 외에도 불국토 연출과 함께 왕권의 강화를 위한 것으로, 청암동 토성 내에 사찰이 조영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이 밖에도 천도로 인한 인구유입으로 낙랑구역 또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3기는 중구역에 새로 축조된 장안성이 도성으로 기능하였다. 왕성과 궁성으로 이루어진 평양 2기와는 달리 격자형 도로를 이용하여 도성민의 거주 구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이를 둘레가 16㎞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으로 감싸 보호하는 새로운 경관이 형성되었다. 대성구역과 낙랑구역은 인구의 유출로 도시가 축소되었고, 그 결과 낙랑구역은 사냥터로 전락하게 되었다. 왕릉은 전면에 사신이 등장하는 벽화가 그려진 석실분으로, 여전히 도성 외곽에 분포한다. 다만 진파리 고분군과 강서삼묘 등에서 확인되는 삼각형 배치는 가족 관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성의 구성요소와 경관
Ⅲ. 평양지역의 경관 변화
Ⅳ. 평양도성의 경관 변화와 그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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