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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0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51 - 18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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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개성의 선죽교를 탐방 조선시대 문인들의 선죽교에 대한 인식과 시적 형상을 정리한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선죽교의 혈흔을 목도하고 그때마다 추모의 정을 담거나 비분강개의 뜻을 펼쳤으며, 순절의 의미를 되새겨 살신성인의 도를 후학에게 권려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심경을 시에 담았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시를 ‘선죽교시’라 묶고 다양한 형상을 정리하였다조선시대 문인들에게 선죽교는 단순히 포은이 격살당한 졸명지(卒命地)의 유적이 아니다. 포은의 충절을 상징하는 표상이며, 유교정치를 표방한 조선시대 강상(綱常)의 근원지이다. 조선후기 우국지사(憂國之士)들에게 선죽교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결연히 충정을 다짐하던 성지(聖地)로 인식된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선죽교시에 표출된 시적 형상은 1)회고(懷古), 2)상심(傷心)과 애도(哀悼), 3)포은의 값진 죽음의 찬미, 4)충절(忠節), 5)강상(綱常) 등의 유형으로 구분해 살필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유형은 복합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내용과 함께 해당하는 시편의 시어(詩語)를 중심으로 구분하였다. 1) 회고의 유형은 주로 조선 초기 문인들의 시편에서 나타난다. 선죽교 주변의 황폐한 들판과 석양을 통해 고려왕조의 시운을 탄식하는 양상이다. 2) 상심과 애도의 유형은 가장 일반적인 양상으로 선죽교와 읍비를 목도한 문인들이 포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정회를 표하는 양상이다. 3) 포은의 값진 죽음의 찬미한 유형에서는 포은을 고려왕조와 함께 천명(天命)을 다한 충신으로 인식하고, 포은의 죽음을 정명(正名)사상에 근거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4)충절(忠節)의 유형에서는 포은을 고충(孤忠)·의사(義士)·열사(烈士)로 인식하고 주로 백이(伯夷)와 문천상(文天祥)에 비유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5)강상(綱常)의 유형으로 구분한 시편에서는 포은이 시운(時運)을 잘못 만나 순절하였지만 오히려 만고의 강상을 후학에게 끼쳤음을 칭송하고 있다. 포은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종으로 인식된 만큼 조선시대 문인들이 선주교시에서 강상을 주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양상이다. 1)2)의 양상이 일반적이라면 3)4)의 양상은 주로 국난의 위기에 처한 때에 강조되고 있다. 특히 조선말기 우국지사의 시편에서 나타난다. 5)의 양상은 유학자들의 시편에서 강조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선죽교는 고려왕조와 포은 정몽주를 연상시키는 유적이다. 정신적으로 충절과 강상을 표상하는 성물(聖物)이다. 특히 선죽교의 혈흔(血痕)은 포은의 죽음을 더욱 신성(神聖)하게 한다. 아울러 선죽교와 함께 읍비는 주군인 포은에 대한 녹사의 충정을 회상케 하는 매체로 형상화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 혼란한 정황과 국가 존망의 위기가 닥쳤을 때 포은과 함께 선죽교는 더욱 주목 받았다. 이 당시 최익현·송병선·김윤식·조긍섭 등은 충절과 우국충정을 담아내는 매체로 선죽교를 형상화하는데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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