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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9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43 - 17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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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아테네인들에게는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네로 진격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성공적으로 물리친 국경이었다. 이 승리의 경험은 아테네 자긍심의 핵심적 요인이 되었으며, 전투의 여러 면모는 아테네 중심적 기억을 생성하고, 아테네의 승리를 설명하게 되었다. 전투 직후에 전장에는 전몰자들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이 전몰자들은 전쟁의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이들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적 영웅으로 숭배되었다는 위틀리의 이론과는 달리 본 논문에서는 이들이 아테네인들의 조상으로 숭배되었다고 주장한다. 전몰자들은 아테네인들이 본받아야 할 아테네의 덕목을 상징한다고 생각되었다. 전장에는 승전비도 세워졌는데, 이오니아 양식을 따라 아테네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마라톤 밖에는 델피와 아테네 시내가 가장 눈에 띄는 선전 장소였다. 델피에서는 클레이스테네스가 지은 아테네 보고에 이 보고가 마라톤의 전리품으로 지어졌다는 비문이 새롭게 붙었다. 이 비문은 아마도 키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동시대에 아버지 밀티아데스가 포함된 마라톤 베이스를 세우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테네 시내에는 마라톤 전투가 스토아 포이킬레에 묘사되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나 니케 신전에는 마라톤 전투와 함께 헤라클레스의 후손과 에우리스테우스 사이의 싸움이 묘사되었다. 이 신전은 기원전 425년 필로스에서 스파르타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써, 이미 마라톤 전투가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지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전투의 모티브는 여전히 기억되었고, 아테네인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주었기에, 필로스의 승리와도 어울린다고 여겨졌다. 아테네인들에게 마라톤은 오랜 시간동안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아테네를 지켜주는 진정한 국경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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