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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문자 (상명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2집
발행연도
2021.5
수록면
3 - 42 (40page)
DOI
10.18496/kjhr.2021.0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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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의학사적인 측면에서 도요토미 정권이 임진전쟁 중에 발생한 부상자 및 사망자에 대한 치료처치와 이에 대한 의료정책은 어떻게 전개했는지를 고찰했다. 그 결과 첫째, 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의 치료를 위해 시의(侍醫)뿐만 아니라 “번의(番醫)”를 편성하여, 윤번교대진료(輪番交代診療) 시스템을 통해서 의료체제를 구축하였다. 번의 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야쿠인 젠소(施藥院全宗, 1526~1599)로, 나고야까지 출정하여 히데요시의 건강 문제와 조선에서 병을 얻어 소환된 다이묘들의 진료를 담당하였다.
둘째, 히데요시의 의료정책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야쿠인(施藥院)” 의 부활이다. 이곳은 신분을 불문하고 치료를 재개하였고 젠소에게 야쿠인 운영을 맡기면서 의료체제를 부활시켰다. 이는 에도시대 養生所 설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셋째, 조선 주둔 다이묘의 의료 문제와 관련해서는 毛利家의 경우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히데요시는 진주성 공격 전에 의사 20명을 각 부대에 배치하였다. 그는 부상자, 동사자가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남해안 근처에 성을 축조하기 이전까지는 이들에 대해 귀국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이후 각 지역의 부상자 치료는 일본 본국의 진영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넷째, 히데요시가 1593년 8월 나고야를 떠나면서 초반에 15~20일씩 걸리던 戰況 보고가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90~100일까지 걸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 부상자와 사망자에 대한 실무진의 보고와 이에 대한 히데요시의 군령 및 조치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같은 비효율적인 명령 전달 체계로 死者 및 病人들이 속출하면서 한층 부상자와 전쟁의 인적 피해가 컸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도요토미 정권의 의료체제
3. 히데요시의 부상자・사망자에 대한 처치-2차 진주성 전투를 전후로-
4. 히데요시의 다이묘에 대한 의료 처치
5. 임진전쟁과 의학서
6.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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