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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숙 (독립연구자)
저널정보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53 - 28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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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는 사대부 혹은 남성 지식인의 시문에서 호칭되고 형상화되었다. 먼저 여사의 의미 및 여사(女士)와의 관계를 살폈다. 여사는 16세기 전반 공적(公的) 시문에서 여사관(女史官)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16세기 이후 18세기 말까지는 죽은 이를 기리는 시문에서 여사(女士)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덕행을 바탕으로 집안을 잘 다스리고 후손이 잘되게 한 사대부 가문의 여성이 여사라고 개념화되었다. 18세기 이후 여사의 다양화 및 의미 범주의 확장이 나타났다. 그림을 덕행과 더불어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 덕행과 화가의 능력이 있는 사대부 여성을 여사로 보았다. 19세기 중반에는 여사가 예술가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사대부들은 여사들과 시문 혹은 그림을 통해 교유하였다. 여사들은 시·서·화에 능했으며 대체로 신분이 기녀이거나 소실이었다. 여사는 시희, 시아, 교서 등의 호칭을 아우르며 대표하는 호칭이었다. 곧, 신분이 낮은 여성들에게 적용 확장되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는 중국과 일본의 여사들이 형상화되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활약했던 청나라 여성 화가들을 통해, 여사가 뛰어난 화가이면서 신분적 우위에 있는 여성이란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 여사들은 신분이 높았으며 명망 있는 문인이나 화가 집안 출신으로, 입지를 다진 화가였으며 여성 교육에도 힘썼다. 곧, 청·일의 시·서·화에 뛰어난 신분 높은 여성, 나아가 여성 교육에 힘쓴 이들을 여사라고 하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우리나라 여사 의미의 변화가 나타났다. ??본조여사??는 여사 선정 기준을 다양화했고 신분에 관계없이 남다른 행적이 있으면 서술하였다. 여사의 범주를 확장하였고 나라의 위기를 당하여 여사를 본받고자 하였다. ??동양역대여사시선??은 조선 여사 63명과 그들의 시 140제를 수록하였는데,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시에 뛰어난 여성 작가들을 여사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20세기 초에 이르면 여사의 형상화가 신분을 벗어나 덕행, 예술, 학문,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남다른 행적이 있는 여성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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