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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석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87 - 124 (38page)
DOI
http://dx.doi.org/10.18347/hufshis.2022.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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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을 포함하는 만추리아 전체가 入關 이전부터 청조의 영토였을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만추리아라는 근대적 지리 개념을 청조의 지배집단인 만주의 고향과 연결한 데에서 온 착시이다. 실제로 누르하치의 출신 집단인 建州女眞 숙수후부의 거점은 長白山 이북, 명의 遼東邊墻 이동 지역이었다. 건주여진을 포함한 여진계 집단의 근거지를 모두 합한다 하여도 그 지역은 만추리아의 남부에 국한되었다. 아무르강-눈강 유역에 ‘黑龍江將軍 관할구’가 설치되고 청의 직할지로서의 지배가 시작된 것은 1680년대 러시아와의 충돌 과정에서였다. ‘흑룡강장군 관할구’가 형성되기 이전 청조가 장악하고 있던 만추리아의 지역은 요동을 중심으로 하였다. 1670년대까지도 청조의 군사 거점?교통로 설치는 柳條邊 안을 중심으로 하였고, 닝구타와 같은 임시 거점이 유조변 밖에 일부 존재하였을 뿐이었다. 1670년대 길림 개발과 유조변 신변의 설치로 청의 직할지가 확장되었으나 여전히 성경-길림-닝구타를 잇는 선 북쪽의 광활한 아무르강-눈강 유역은 청의 직접 통치가 미치지 않는 ‘外藩’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680년대에 러시아 세력이 아무르강 중상류 유역 알바진(Albazin)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변화하였다. 알바진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점으로 성장하자 강희제는 러시아 세력을 아무르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원정을 진행하였다. 신설 흑룡강장군을 중심으로 전개된 두 차례의 알바진 원정은 강희 28년(1689) 네르친스크 조약의 체결로 마무리되었다. 이 조약에서 흑룡강장군 관할구는 명실상부 청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다만 흑룡강장군 관할구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전쟁의 수행이나 국경의 획정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전후한 시기 진행된 해당 지역에 대한 청의 통치권 확대 과정이었다. 1670년대 러시아 세력과의 격돌이 있었던 아무르강 중하류 및 송화강 유역과는 달리, 아무르강 중상류 유역은 당시 청군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기반이 충분히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군을 동원하여 알바진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청군의 주둔지를 설치하고, 군량을 운반하기 위한 보급로와 인력?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역참로를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강희제는 우선 관원을 파견해 아무르강 중상류 유역에 대한 지리 조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종합하여 아이훈에 駐防 설치를 명하였다. 또한 성경?길림 등 기존에 청조가 장악하고 있던 지역과 아이훈을 연결하는 보급로와 역참로를 개척하였다. 역참로 개척 과정에서 중요성을 확인한 머르건에도 주방을 설치하면서 아무르강-눈강 유역에 대한 청조의 지리적 이해는 점차 심화되었다. 군사 주둔지의 설치와 교통로 개척을 배경으로 청조의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는 심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아무르강-눈강 유역은 청조와 느슨한 관계만을 맺고 있던 ‘外藩’에서 청조의 주방 장군이 직접 통치하는 ‘直轄地’인 ‘黑龍江將軍 관할구’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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