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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세이 (부산대)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4輯
발행연도
2016.3
수록면
9 - 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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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鮮卑族은 고구려 국초부터 멸망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깊은 관련을 맺었다. 특히 5호 16국의 혼란기에 비등한 힘을 가지고, 요동지역 패권을 다투었던 고구려와 모용씨 선비 前·後燕의 관계는 거의 100년간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상호간 발전의 동력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고구려의 서쪽 경계에 대해서는 遼河를 서북 경계로 하였지만, 隋代까지는 일부 遼河의 서쪽에까지 미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적인 견해이다. 국초 태조왕 대로부터 끊임없이 시도되었던 고구려의 요동지역 영유가 언제 완전하게 획득되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광개토왕 대였다는 것에는 이설이 없다.
요하선을 기점으로 한 고구려의 서쪽 경계가 고착화 되기까지에는 부침 또한 많았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3세기 중반 慕容氏의 요서지역 이주로부터 前·後燕·北燕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와 ‘三燕’ 시기의 사료 분석을 통해 고구려의 서쪽 방면에의 진출에 대해 살펴보고, 고구려의 서계형성사에 있어 그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고구려는 전연 때까지는 아직 요동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고국양왕 대에 이르러 평곽을 제외한 요동의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광개토왕 대에 이르러 요동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였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후연 말에 이르러서는 요하를 넘어 숙군을 주요 거점지역으로 하는 영주 일대도 일정 시기까지 영유하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와 前燕의 성장과 境界
Ⅲ. 고구려와 後燕의 각축과 境界
Ⅳ. 고구려와 北燕의 和好와 境界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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