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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상우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89호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175 - 208 (34page)
DOI
10.37331/JKAH.2018.03.8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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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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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반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을 상실하자 신라와 연합을 형성했다. 그러나 565년 신라 역시 동이 세계의 우위를 상징하는 東夷校尉에 책봉되면서 정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는 이전의 대외적 우위를 재구성한다는 명분으로 한동안 北齊와의 외교를 중단하고 陳 · 倭와 교섭하여 신라와 외교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돌궐과 高保寧, 隋의 등장으로 요하 일대에 위기가 지속되자, 고구려는 군사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嬰陽王이 즉위한 후, 고구려는 溫達을 보내 신라의 阿旦城을 공격했다. 교전 시점은 정황상 고구려와 隋의 관계가 회복된 591년 3월 이후에서 신라가 隋에 처음으로 사신을 보낸 594년 사이로 짐작된다. 阿旦城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서울 峨嵯山城일 가능성이 보다 높다고 추정된다.
고구려의 신라 阿旦城 공략은 양국의 연합이 청산되었음을 의미했다. 또한 한강유역 회복 의지와 신라의 對中國 교통로를 차단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唐代에 고구려-백제-倭가 연합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590년대 고구려의 신라 공격은 외교 · 군사 전반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대외 현안에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6세기 중반 국제정세의 변동과 高句麗의 대응
III. 590년대 초반 高句麗의 세력권 회복 정책과 阿旦城 공격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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