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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승현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북아학회 한국동북아논총 한국동북아논총 제23권 제2호 (통권 제87호)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15 - 132 (18page)
DOI
10.21807/JNAS.2018.06.8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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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중국의 교민정책에 관한 연구는 주로 다음의 내용을 품고 있다. 즉 화교는 줄곧 중국의 국가발전을 위한 주요역량이었다; 건국 이래 중국정부는 화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른바 50년대의 “평화공존” 외교정책 및 이중국적 불허 방침은 동남아 국가와의 외교발전 및 이를 통한 화교의 생존 및 발전을 위한 고려였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효율적 교민정책을 전면적으로 파괴한 극좌적 오류였다; “개혁개방”을 통해 과거의 교민정책이 회복되었다.
그런데 당시 동남아 각지의 화교는 위 평가와는 사뭇 다른 중국의 요구에 따라 질곡의 역사를 경과하였다. 즉, 한때 중국은 화교를 “혁명수출”에 적극 활용하면서 그들의 조국을 향한 “애국”을 칭송하였다; 또 한때 중국은 화교의 “애국”을 거부하고, 대신 현지 국가에 충성하라고 강박하였다; 심지어 중국은 화교를 “자산계급의 대리인”이라 부정하고, 화교의 수난을 방임, 혹은 조장했다.
중국 교민정책에 대한 연구와 실제 상황 사이의 충돌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지배구도 및 중국공산당의 “무산계급 국제주의” 노선을 간과(혹은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오직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교민정책을 살핌으로서 야기된 불가피한 결과이다. “무산계급 국제주의”, 특히 이에 따른 “혁명수출”은 1978년 공식적으로 폐기되는데, 이는 곧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부터 1978년 이전까지의 중국 교민정책이 “무산계급 국제주의”에 의해 지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본 연구는 “문화대혁명” 이전 중국공산당이 생산한 관련문헌에 관한 분석을 중심으로 교민정책의 변화과정 및 그 주요 특징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당시 중국의 교민정책이 “무산계급 국제주의” 노선에 지배되고 있었음을 규명하였다.

목차

초록
Abstract
Ⅰ. 서론
Ⅱ. “혁명수출”의 선봉대
Ⅲ. 교민정책의 조정: 화교역량의 전략적 은폐
Ⅳ. 화교의 현지화: “흰개미”의 역할
Ⅴ. “무산계급 국제주의”를 위한 화교의 희생
Ⅵ.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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