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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세영 (세한대학교)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학 제70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21 - 258 (38page)
DOI
10.37996/HS.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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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는 그동안 연구되지 않았던 전남지역 화교의 이주와 생활상을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서 광주?전남화교 연구의 기본적인 토대를 구축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나아가 전남화교가 타 지역 화교와 비교하여 갖는 특징이 무엇인지 발굴하고, 국내 화교사 전체 맥락 속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찾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는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전남화교의 정착과정과 경제?사회적 활동을 살펴보았다. 전남화교의 기원은 1893년 목포로이주한 2명의 상인이며 전국에서 4번째로 화교가 이주한 지역으로서의 의의가 있다. 1917년에는 전남의 22개 시?군지역 전체에 화교가 분포하여 거주하였고, 1925년에는 일제 강점기 중 가장 많은 화교가 거주하는 발전기를 맞았다. 이러한 화교인구의 증가와 정착의 확대는 포목업을 중심으로 하는 활발한상업활동의 결과다. 중국에서 들여온 값싸고 품질좋은 포목제품은 농업중심사회이며 인구가 많아 수요가 컸던 전남지역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졌다. 포목업외에도 잡화점, 주물공업, 음식업, 채소재배, 건축과 단순노동 등의 경제 활동에 화교들은 종사하였다. 그러나, 1931년 만보산 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이러한 경제활동은 큰 타격을 받았고 본국으로 귀환하는 화교들이늘어났으며, 지역 경제 침체와 함께 전남지역의 화교비중은 전국에서 비교적낮은 수준으로 전환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중화상회라는 단체 설립을 통해 지역별로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만보산 사건 중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큰 피해가 없었다. 이는 화교가 전남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비교적 좋았고. 특히1930년 광주-여수 철도 부설 현장에서 일본인 건설업자에 대항하여 동맹파업을 하는 등 국내 화교사에 유례가 거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일정기간 융성했던 화교사회와 활발했던경제활동은 향후 광주?전남과 중국간 교류 활성화의 필요성과 이를 위해서는지역경제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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