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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세영 (세한대학교)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학 제73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61 - 18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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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방 이후 광주화교 사회의 재구축 과정을 중심으로 광주화교의 생활상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중일전쟁 이후 구성원들이 대폭 중국으로 철수하고상업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사실상 해체 수준에 들어갔던 광주화교 사회는 해방과함께 3가지 측면에서 재건에 들어갔다. 먼저, 해방 후 조직된 화교 자치구가 거주화교를 보갑제로 편제하여 관리함으로서 구심력을 잃고 흩어졌던 화교사회를 통합하였다. 다음으로 화교 소학교를 건립하여 교육적 필요를 충족함은 물론 문화적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또한, 해방 후 인근지역 화교와 국공내전 이후 국내로 이주한 화교들이 상당수 광주로 유입됨으로서 재구축 과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인적자원을 제공하였으며, 해방 전부터 거주해온 기존 화교들과 함께 음식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재구축의 결과로 먼저 70년대 중반까지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하는 등화교사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경제생활은 핵심 영위업종이 포목업과 농업에서 음식업과 식재료상, 주물업 등으로 변화된 가운데 상업활동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아울러 취학 인구증가에 따라 소학교 교사의 신축에 이어 1965년 화교중학교, 1972년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증설하여 교육적 기반을 확충하였다. 재구축 과정과 그 결과로 인해, 광주화교 사회가 보여준 다른 지역의 화교사회와 대비되는 차별점은 소학교 설립을 자체 모금으로 추진할 만큼 자립성이 강했다는 것과 인구규모 가 1970년대 이후 화교소멸 위기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나름대로 화교사회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향후 연구과제로는 광주화교 사회를 이끈 중요 인물과 단체, 상점에 대한 자료확보와 함께 1970년대 후반 이후 광주화교들의 재이주 현상과 한중수교 이후 광주에 유입된 신화교와 구화교간의 관계 정립 등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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