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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환 (광운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우리文學硏究 제64집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175 - 205 (31page)
DOI
10.20864/skl.2019.10.6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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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재상가의 첩으로 살다가 쇄환을 명령받자 자결한 한 의주 기생의 죽음을 둘러싼 조선 후기 한 가문의 반응과 그녀의 죽음을 활용하는 방식을 살피고자 하였다. 정태화와 정치화는 17세기 중반에 형제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좌의정 정치화는 의주 출신의 기생 한씨를 첩으로 데리고 살던 중에 쇄환령이 나오자, 그녀에게 응할 것을 종용하였다. 한씨는 이에 반발하지 않고 신변을 정리한 뒤에, 모친을 부탁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이 죽음을 가련하게 생각한 이경석은 시를 지어 그녀를 ‘의랑(義娘)’으로 명명하였다. 동래정씨 가문에서는 그것을 근거로 자신들의 선영에 그녀의 무덤을 마련하고 비석을 세워 그 의리를 기념하였다. 청나라 황제가 ‘조선은 신하가 드세다[臣强]’면서 조선의 왕을 위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대의 실력자 동래정씨 가문은 한씨의 죽음을 자신들이 서북지방의 쇄환령에 솔선수범한 증거로 활용하였다.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정치화는 함께 연행에 참여했던 이만영에게 사연을 전해주었고, 이만영은 곡진한 사랑의 서사로 그 사연을 풀어냈다. 그러나 동래정씨 가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력들은 가문의 수장인 정태화의 박정함에 기생첩이 자결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기생첩 한씨가 죽음에 이른 사연
Ⅲ. 신강(臣强)의 혐의 벗기
Ⅳ. ‘정치화’가 ‘정태화’로 바뀐 이유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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