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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찬섭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38호
발행연도
2020.5
수록면
121 - 164 (44page)
DOI
10.31552/jh.2020.5.3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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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농민항쟁이 삼남 일대로 퍼져나가자 중앙에서는 조사와 처벌, 효유와 폐단의 이정을 위해 안핵사, 선무사, 암행어사 등 가장 많은 관리를 파견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그 가운데 평시에도 자주 파견하였던 암행어사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안핵사, 선무사가 대체로 중견관료였던데 비해 암행어사는 대부분 과거를 통과한지 3~4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고 유능한 신하들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촉망받는 인재들이었고 삼사 중심으로 활동한 왕의 근신이었다. 삼남 일대에 10명이나 되는 암행어사가 파견되어 모두 35곳을 돌아봤는데 이 지역이 농민항쟁이 집중적으로 발발하였기에 자연히 그 실상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들은 평시에 파견되었던 암행어사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일반적으로 암행어사는 수령에 대한 감찰이 중심이라면 이때에는 이와 함께 항쟁의 원인을 살펴 그 대책을 마련하고, 때로는 안핵이나 선무 활동까지 겸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평시보다 활동이 상당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해당 고을 수령에게 미리 통고를 하기도 하고, 수령으로부터 삼정에 대한 대책을 받기도 하였다. 때로는 몰려든 고을민으로부터 읍폐에 관한 호소를 듣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들은 수령장부와 읍폐조사를 수행하면서 나아가 당시 농민항쟁의 원인과 상황을 조사하고 삼정대책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서계를 통해 수령에 대한 감찰을, 별단을 통해 삼정을 비롯한 여러가지 고을 문제를 다루고 있어 개별 고을의 구체적인 상황뿐 아니라 지역에 따른 차이를 찾아볼 수 있으므로 당시 국가 전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1862년 삼남 일대의 농민항쟁으로 국가적인 위기가 빚어진 상황에서 암행어사 파견은 삼정체제를 구폐하고 지방관과 이서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조정에서도 지방민의 실태, 수령의 탐학 등 지역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얻는 방법은 암행어사 제도라고 생각하고 강화하려고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I. 1862년 농민항쟁과 암행어사의 임명 과정
Ⅱ. 암행어사의 파견 지역과 보고
Ⅲ. 암행어사의 활동과 성과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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